2021년 11월 5일 금요일

집을 짓는다면?




만약 집을 짓는다면 


지하 1층 지상 2층 건물을 올리고 싶다.

다만, 경사로를 이용해서 지하는 경사로로 건축법상 지하이지만, 건물로서는 1층이 내 집의 2층인 집으로 짓고 싶다.


층고는 높게 하고 싶다. 

2층에 서도 3층같은 느낌이 나도록.


계단은 촘촘하지 않고 넉넉하게 걸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계단을 오를 땐 세로로 긴 창문이 있어서 밖을 볼 수 있거나, 그림을 걸어 두고 싶다.


주방은 동선이 좋았으면 좋겠다. 싱크대는 벽이 아니라, 거실을 향했으면 좋겠다. 

식탁은 크지 않도록 해도 될 것 같다.

소박한 밥상이 마음을 차분하게 하고, 건강에도 좋으니까.


거실은 TV보단 책장과 넓은 테이블을 놓고 싶다. 창문은 크고 전망은 앞 마당 또는 숲이었으면 좋겠다.

거실 한 켠엔 그림을 걸어 둘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앞 마당은 좁은 화단 같았으면 좋겠고,

뒷 마당이 있었음 좋겠다. 가족 또는 친구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지하 주차장이 1층이고, 거실이 2층이었음 좋겠다. 

지하 주차장은 창고와 세탁실로 이용하고 싶고, 내 방도 그곳에 있음 좋겠다.


1층엔 거실과 주방 간단한 샤워시설이 있는 화장실 그리고 방이 한 개.

2층엔 작은 거실, 간이 주방, 화장실 2개 (한 개는 방, 한 개는 밖) 방은 2개.


2층엔 복도가 있어서 그림을 걸어 두고 싶다. 


빛이 많이 들어 오면 좋겠고, 계절의 바뀜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티비도 봐야하겠지? 티비는 2층 거실이나 안방에 두고 싶다. 

가끔 영화를 보거나 뉴스를 볼 수 있게.




열심히 살아야겠다. 

2021년 10월 6일 수요일

[웃긴 사람들]

큰일이다. 요즘 아저씨가 되고 있는게 분명하다. 자꾸 진지빨게 되고, 자꾸 눈앳가시가 늘어난다. 




유퀴즈를 보다 이정용씨가 나오는 것을 보았다. 과한 열정과 에너지가 가히 부담스럽긴 했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와 진심을 보며, 그리고 그의 나이를 생각해보며 그의 열정과 에너지는 결코 우수워지면 안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이정용씨가 비록 젊은 사람들이 자주 보지 않는 6시 내 고향에 출연한다고 해도, 그는 그 방송을 보는 어르신들에게 자신이 줄 수 있는 것을 최선을 다해서 준비해서 보여준다. 
50,000보(약 35km)를 걷고, 만나는 이에게 이야기를 듣고, 들려주고, 힘이 되어주고. 
또 그는 그 어른들에게 깨달음을 얻는다. 
이것만으로도 그의 열정과 과하다고 보이는 액션은 결코 가볍게 웃어 넘길 것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된다. 



강호동씨도 그렇다. 과거 나영석 pd가 한 말이 기억이 났다. 

강호동씨가 노란 쫄쫄이를 입으며 코끼리 코를 돌고 있는데, 저 형과 내가 얼마나 오래되었는가. 생각해보니 문뜩 깨달아졌단다. 꾸준한 사람이야 말로 대단한 사람이구나 라는 것을. 


예능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인식이 한국은 여전히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한국에서 살 때 한 사람의 Narrative를 모른 채 뒤에서 시시덕 거리며 웃는 소리가 얼마나 많았던가. 

저 사람은 ㅂㄹㅂㄹㅂㄹㅂㄹㅂㄹㅂㄹㅂㄹ.....하며 낄낄낄 킄킄킄...하는 소리. 


얼마전 잠시 일하던 직장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온지 얼마 되지 않은 한국직원이 분명 부적절한 태도로 흑인 UPS기사에게 말을 했다. 그 흑인 기사는 대체 무슨 X같은 사람이냐며 되려 나에게 따졌다. 나는 그 직원이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잘 모르니 내가 대신 사과한다고 했다. 그러자 저 사람이랑 일하는것은 좋지 않겠다며 되려 나에게 조언(?)을 해주고 떠나갔다. 


그 때 놀라운 광경을 보게되었다. 그 한국직원이 정신승리를 시전하는 것이다. 흑인비하는 물론이고, 그 시시덕과 낄낄댐을 보고 있노라니 구역질이 올라왔다. 

자신의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되려 그 사람의 반응을 웃기고 어리석은 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미국 생활을 하며 한국에 돌아가고 싶단 생각을 자주했다. 

그러나 이 경험은 나에게 한국 사람들의 문화에 대해서 또는 한국 사람들의 생각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별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졌다. 한국은 그립지만, 한국 사람은 그립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남을 깎아내리는데 너무나 진심이고 전력인 사람들. 


과연 누가 진짜 웃긴(?)사람들일까? 

자신의 일이 어떠하더라도 진지하게 받아드리고 열심히 준비하고 나름의 철학이 있는 사람일까? 

아니면

자신의 상황은 고려하지 않고, 대충 자기와 비슷하거나 뽐나지 않는다면, 무차별적으로 깎아내리는 사람이 웃긴 사람일까? 



2021년 4월 22일 목요일

[음악감상에 대한 단상]















10대 시절에 취미생활은 '음악감상'이었다. 

CD Player에 가장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을 구입한 뒤 침대에 누워 노래를 한 곡씩 천천히 음미하듯 듣곤했다. 타이틀곡을 가장 먼저 듣기도 했지만, 대부분 앨범의 Set list 순서대로 들었다. 

그래서 학창시절엔 친구들에게 나름대로의 숨겨진 명곡을 들려 주기도 하고, 알려주는 즐거움도 있었다. 아마 내 기억으론 그 당시 친구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노래 추천 부탁도 많이 받았고, 알려주는 것도 그렇게 부담스럽지 않을만큼 노래를 많이 듣고, 알았다 .


그렇게 노래들을 하나씩 음미하던 거의 유일했던 취미가 대학과 대학원 생활을 하고, 취직을 한 뒤에 사라졌다. 


내가 음악을 나의 집중을 위한 백색소음으로 변질시켰고, 가수들의 열정과 나에게 건내오는 가사의 메시지는 나의 집중을 위한 소모품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노래를 듣지 않고, 소비했던 시간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최근 미국에서 생활하며, 다시 노래를 듣는다. 스트리밍 서비스는 음악을 편하게 접하게 하는 만큼 음악의 가치를 잊게도 만든다. 노래를 모아서 들려주는 유튜브 채널이 나의 생활을 편리하게 하지만, 내가 노래를 스스로 찾는 과정에서의 즐거움은 사라지게 만들었다. 


그래서 다시 앨범 전체를 듣기 시작했다. 밤 12시가 넘어 가족들도 모두 잠들고, 혼자 거실 차가운 바닥에 누워 에어팟으로 노래를 듣는다. 


에어팟 프로의 노이즈 켄슬링은 너무 좋다. 날이 좋은 날은 밖에 아무 의자에 앉아서 햇살 아래 노래를 듣는다. 바람소리도, 주변의 소음도 사라진다. 


가사 한 구절, 한 마디, 한 단어 천천히 되뇌이며 들어본다. 그러다 보면 듣고 싶은 음악과 듣기 싫은 음악이 나뉜다. 신나고 경쾌한 노래, 차분하고 편안한 노래, 서정적이고, 구슬픈 노래 각각의 안에 담긴 가사가 어떠한지 생각하게 된다. 

하루를 보낸 나의 기분에 따라 그 노래의 색감도 변한다. 


미국은 느리다. 부모들은 여유롭게 아이들의 실수를 기다려준다. 

물론 미숙한 나의 영어 실력도 기다려 준다.(그렇지 않은 사람도 분명히 있다.)

느린 생활에 익숙해졌다 말하긴 어렵지만, 빠른 한국 생활에서 놓쳤던 것들이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해본다. 빠른 만큼 놓친 것이 분명히 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놓쳤을까? 

2021년 3월 21일 일요일

[온라인 게임하다 플레이스테이션 복귀한 뒤 썰푼다]

      Photo by eberhard grossgasteiger on Unsplash



오랜만에 블로그에 글을 쓰러 왔다.

뭘 쓸까 하다가 몇 달 전부터 머릿속에 멤도는 '온라인 게임' vs '콘솔 게임'이 오늘의 주제다. 


나는 어린시절부터 원래 컴퓨터 게임을 했다. 다들 알듯 추억의 삼국지 영걸전, 공명전, 조조전과 함께 삼국지 파워업키트 4, 퍼스트퀸 4, 커맨드 앤 컨커, 스타크레프트, 브루드 워, 디아블로까지 스타크래프트 베틀넷이 아니었다면, 나는 왠만하면 혼자서 머릿속에 이야기를 만들며 게임하는 것을 좋아했다. 비주류 케릭터를 좋아하기도 하고, 전략을 스스로 머리에 짜보기도 하면서 게임을 말 그대로 공부하듯(?) 즐겼다.


그러던 어느 날 온라인 게임 '리니지'가 찾아왔다. 처음 리니지를 할 땐 그 전 게임을 하듯 내 마음대로 했다. 검도 이것저것 주워보고, 케릭터도 내 마음대로 이것저것 키워봤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정보를 구할 곳이 많아졌고, 정보를 구하며 이야기를 하다보니 무엇이 더 효율적이고, 좋은지 알게 되고, 그 지독한 '비교'가 시작되었다. 


비교가 한번 시작되니 정말 끝도 없었다. 계속해서 내 애정어린 케릭을 지우기도하고, 다시 키우기를 자주 하곤 했다. (그놈의 축케릭 저주케릭) 그렇게 허리 건강과 맞바꿔서 케릭을 키워 그 당시엔 엄청 좋았던 켄트성의 혈맹에서도 활동해보았다. (오크성도 가지고 있긴 했지만, 여긴 수입보단 물약값이 더 나갔던 것 같다.) 게임을 지독하게 했지만, 이상하게 피곤하고 게임 자체가 주는 이야기 보단 혈맹 내에서의 대화가 더 재미있었다. 케릭터가 매력이 있다기 보다는 그 게임 안의 커뮤니티가 주는 즐거움과 이야기가 더 좋았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 리니지는 안녕하고, 이런 저런 온라인 게임을 떠돌다가 리그 오브 레전드를 만났다. 

이 게임도 전공을 해야할 정도로 공부하고, 연구했다. 그런데 패치 한번 할 때마다 그놈의 티어를 나누고 비교하는 습성들이 사라지질 않았다. 내가 하고 싶은 방향성과 이야기는 사라지고, 끌려가듯 게임을 하는 모습에 롤을 지워버렸다. 


몇 달간 게임 없이 건강하게 살았다. 그런데 또 심심한 그 시간을 채워야 하지 않겠는가? 

플레이스테이션을 샀다. 


문제는 10년이 넘게 온라인 게임을 하며 길들여진 효율과 티어의 굴레가 나를 감싸고 있었다는 것이다. 무엇이 더 효과적이고, 무엇이 더 좋은지를 비교하면서 게임 자체의 스토리와 다양한 케릭터들의 매력을 잃어버렸다. 선택지가 주어지면 뭐가 더 좋은 선택이 될지 검색하며 게임의 스토리를 스스로 끝까지 알아버리고 게임을 하기도 했다. 


비참했다. 

게임 하나 하면서도 계속해서 비교하고, 그 자체를 즐기지 못하게 되버린 모습이 처참했다. 


문제는 그 성향이 삶에도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선택을 함에 있어서, 주저하게 되었고, 그 선택 후 주어지는 상황에 몰입하지 못하고,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하는 후회가 머릿속에 안개처럼 자리잡았다. 


이젠 온라인 게임은 하지 않는다. 콘솔게임만 할 것이다. (물론 요즘도 자주 하진 못한다) 

왜냐하면 콘솔 게임이 주는 느려도 괜찮은, 무드가 좋기 때문이다. 


삶도 그렇게 살고 싶다. 내 선택을 누구와 비교하지 않고, 그 자체로 즐길 수 있는 삶의 태도를 견지하고 살고 싶다. 


집을 짓는다면?

만약 집을 짓는다면  지하 1층 지상 2층 건물을 올리고 싶다. 다만, 경사로를 이용해서 지하는 경사로로 건축법상 지하이지만, 건물로서는 1층이 내 집의 2층인 집으로 짓고 싶다. 층고는 높게 하고 싶다.  2층에 서도 3층같은 느낌이 나도록. 계단은...